백두산·백두대간·정맥/호남정맥[완]

[호남정맥 - 21] 호남정맥 더 갈 곳 없다

산안코 2012. 12. 2. 16:26

◈ 언            : 2012. 12. 1 (당일)

◈ 어          : 호남정맥 21구간 (토끼재~망덕 외망포구)–불암산, 국사봉, 망덕산

◈ 누            : 후종(감자바우), 만수(산타나), 동천(비트) 그리고 고집통

◈ 날            :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240시간 00 (21구간 : 9시간 00)

                        23일차 토끼재 (5:50) → 망덕 외망포구 (14:50) 9시간 00

◈ 정맥 산행거리 : 423.8Km (21구간: 14.5Km)

   산행거리 : 토끼재→불암산→탄치재→국사봉→남해고속국도→천왕산→2번국도→망덕산→망덕 외망포구 ( 14.5 Km) 

 

오늘 새로운 대장정의 막을 내리고자 합니다. 스물 한번을 계획하여 시작한 호남정맥의 기나긴 여정도 시간이 흘러 몇 차례의 계절을 넘어서니 어느새 모든 일정이 소화되고 달랑 한번의 산행이 남았습니다. 다소 섭섭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해가 가기 전에 호남정맥을 마무리하고 금남정맥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하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를 듣고 아래 위 내복을 감싸 입고 최대한 따뜻한 복장으로 중무장을 했습니다. 유비무환, 만사튼튼 이라고 아이젠까지 챙기고 보니 남도 산행 길에 약간 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20구간에 이용했던 진월의 개인택시 번호를 눌렀다 생각했는데 내가 착각을 했는지 외망포구에 나타나신 택시기사님은 초면이십니다. 요금을 치르고 타는 택시라지만 이른 새벽 단잠을 설치게 하여 미안한 마음을 비추니 요즘 시골택시 사정이 여의치 않으므로 어느 시간이라도 괜찮으시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 토끼재 - 호남정맥 스물 한번째 산행 들머리이나 철문으로 막혔음

 

 

토끼재(5:50)에서 호남길 진입로는 사유지 농장이라며 철문으로 콱 막혔고 그것도 불안한지 철조망을 틈새마저 틀어막아 물샐틈없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막는다고 안 갈수 없으니 도로를 따라 약간 우회하여 산비탈을 무조건 치고 올라가기로 합니다. 이미 우리 같은 정맥꾼들이 지나갔음을 표시하는 시그널이 도로 가에 여럿 매달려 있어 진입로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으나 길이 아닌 가시넝쿨을 헤치고 지나가는 일이 새벽부터 예삿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가시에 약한 고가의 패딩 잠바를 입고 온 산타나와 비트가 약간 걱정입니다. 농장주인의 조그마한 배려가 있었다면 정맥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을 약간 아쉽습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에 농장언덕에 올라서게 되고 멀리 광양의 야경과 백운산으로 달려가는 달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농장을 벗어나는 지점에 철조망을 또 한번 통과하고 어렵지 않게 불암산(6:40) 정상에 도착합니다. 송신탑, 산불 감시초소, 넓은 평상과 함께 아담한 정상석이 있습니다. 하동읍과 광양시의 야경이마로 표현할 수 없도록 아름다우며 하동 금오산으로 붉게 타오르는 여명이 우리끼리 보기에 너무 아까워서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 보지만 그림 그대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막걸리 한잔 마셔야겠습니다.

  

■ 농장주인이 철망으로 막고 경고까지

 

■ 불암산 정상의 고집통

 

■ 불암산 정상에서 본 하동의 야경

 

■ 불암산 정상에서 본 하동 금오산 방면 여명

 

 

탄치재(7:17)에는 인근의 레미콘공장에서 스팀인 것으로 추정되는 희뿌연 스모그가 언덕배기 굴뚝으로 내뿜고 있습니다. 도대체 뭔지는 모르지만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온 산을 뒤덮었습니다. 분뇨 태우는 암모니아 냄새 비슷하지만 혹시나 몸에 해로운 염소 성분이 아닌가 싶어 마음 놓고 입을 열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산비탈 오르기에 호흡이 가쁜 판에 냄새까지 애를 먹여 힘들어 죽을 지경입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이런 악취가 이곳 탄치재에서 난다고 선답자의 산행기에 올라오고 있는데 이건 틀림없이 뭔가의 흑막이 있을 것 같습니다.

  

■ 탄치재에 피어 오르는 스팀 - 분뇨 냄새가 천지를 진동함

 

■ 탄치재의 일행들 – 산타나

 

 

호남정맥 남은 구간 중에서 최고봉인 국사봉 오르는 길 우측 과수원에는 고사리, 약초 재배지라며 CCTV 를 설치해 놓았으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많이도 설치해놓았습니다. 과수원주인으로써는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이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국사봉(8:18) 정상까지는 조금 전 악취를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시골 동네 야산 정도의 높이로써 가끔은 과수원 가운데를 통과하기도 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밭 사이를 지나기도 합니다.

상도재(9:16)에 도달하니 할머니 한 분이 밭 가장자리에 앉아 흡사 참깨를 털듯한 모습으로 연신 작대기를 두드려가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계십니다. 내년 봄이오면 밭에 뿌릴 취나물 씨앗을 털고 계신다며 직접 그 씨앗들을 보여주시며 이야기 보따리를 끄집어 내십니다. 우리가 거제도에서 왔다는 소리에 옛날 부산 동아대 병원에서 만났던 젊은 새댁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무 보고 싶은데 전화번호를 잊어버려 아드님께 찾아 달라고 했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줄줄 널어 놓습니다. 우린 가던 길 가야 하는데 말씀을 끊을 수 없어 한참을 듣고 있다 결국에는 병원에 가시면 연락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얼른 자리를 떴습니다.

  

■ 국사봉 오르면서 본 일출

 

■ 국사봉 오르는 길목의 경고문

 

■ 국사봉 오르다 뒤돌아 본 억불봉과 백운산

 

■ 국사봉 정상의 고집통

 

■ 호남정맥에도 철 모르는 진달래가

 

■ 상도재에서 취나물 씨앗 채취 하시는 할머니 - 거제도의 젊은 새댁이를 찾고 싶다고

 

 

삼각점봉과 정박산(9:29)이라는 표지가 걸려있는 봉우리는 167.2m 로써 웬만한 고개마루보다 고도가 낮습니다. 2번 국도인 배합재(9:43)에서는 30m 아래 등산로가 있다고 길 언덕에 페인트로 적혀 있으나 200m 정도는 이동해야 정맥으로 연결되는 임도 시작길이 나옵니다. 그리고 잼비산(11:17)을 넘고 배암재(11:28)도 지납니다. 이제 아주 가까운 거리에 광양만의 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중산마을 뒷동산에 헬기장이 있습니다. 헬기장에 도착하기 전에 남해고속도로 방향으로 우측으로 방향을 돌렸어야 했을 것 같은데 그 헬기장을 지나쳐 버렸고 결국에는 선답자님들의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중산마을 가정집의 뒤뜰로 접근하여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통과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대문을 지날 때 주인이 볼 새라 조용히 잽싸게 통과했습니다만 우리가 올걸 미리 아시고 대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무안하지 않게 자리를 비켜 주셨나 봅니다. 예전에는 주인님께서 호통을 치며 나무랐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식수도 제공해주시면서 너그러워 지셨다니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중산마을(11:54) 앞에는 신기하게도 마을의 공동우물 터에 물이 철철 넘쳐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음씨 좋으신 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 복 받은 마을 같습니다.

  

■ 10시에 점심식사 - 돼지 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

 

■ 정박산 정상

 

■ 정박산의 또 다른 이름 - 삼각점봉

 

■ 배암재(뱀재) - 약 100m 아래 임도 있음

 

■ 잼비산 정상

 

■ 무슨 열맨지 원?

 

■ 삼정치에서 바라 본 광양 앞바다

 

■ 항동마을 - 마중 나온 강아지

 

■ 브라우니가 밭을 지키고 있구먼! ㅋㅋㅋ

 

■ 고집통! 그런대로 볼 만 하구만

 

■ 중산마을 가정집 마당을 통해 대문으로 통과 - 죄송합니다

 

■ 중산마을 우물과 금방 대문으로 통과한 가정집

 

 

남해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고 천왕산(12:36)으로 올라갑니다. 까치 밥으로 남겨놓은 단감이 엄청 나게 달고 맛있습니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지만 그렇게도 긴 세월을 산행하며 돌아다녀도 별 탈이 없었든 오른쪽 장딴지가 갑자기 뜨끔합니다. 쥐가 발생한 그런 경련이 아니면서 장딴지가 아파서 걸음걸이가 영 불편해집니다. 심줄의 문제가 아닌 핏줄에 탈이 생긴 것으로 생각되는데 내가 전문의사가 아니니까 어쩔 수는 없습니다. 오르막과 평지 걸음은 아프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이정도 아픔이 고집통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으니 어쨌든 무시하고 진행합니다. 광양시에서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4차선 2번 국도(13:37)를 무단 횡단하여 뛰어넘고 호남정맥상에서 진짜로 마지막 산인 망덕산을 치고 오릅니다. 망덕산은 지리산의 딱 1/10 높이인 197.2m 이지만 지리산 오르는 것만큼 힘듭니다. 모든 산은 높낮이에 관계없이 무조건 힘이 든다는 것을 여기서 새삼 다시 느껴봅니다.

  

■ 남해 고속국도 굴다리 통과

 

■ 천왕산 오르면서 바라 본 남해 고속국도

 

■ 천왕산 정상의 고집통

 

■ 천왕산 정상에서 바라 본 광양만

 

■ 천왕산 정상에서 억불봉을 뒤로 하고 고집통

 

■ 천왕산 정상에서 바라 본 망덕산과 남해 망운산

 

■ 천왕산 정상의 고집통

 

■ 호남정맥에서 고생하는 고집통 큰 얼굴

 

■ 2번국도 4차선을 무단 횡단하는 고집통

 

■ 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망덕산 정상의 일행들 - 산타나, 고집통, 감자바우, 비트

 

■ 망덕산 정상의 전망대 - 경치 아주 좋음

 

■ 망덕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섬진강

 

■ 망덕산 전망대에서 섬진강 다리를 배경으로 고집통

 

■ 소나무 몸통에 달린 솔잎

 

■ 망덕산에서 내려오며 바라 본 외망포구 전경

 

■ 망덕포구의 안내간판 - 바닷가에 설치되어야 하나 망덕산 입구로 이동해 놓았음

 

■ 망덕산 등산로 앞 고집통 - 호남정맥 스물 한번째 산행 날머리라 더 갈 길이 없음

 

■ 외망포구에서 호남정맥을 졸업한 일행들 -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망덕산(14:00) 정상에서는 단체 기념사진을 남기고 망덕산 전망대로 이동하여 섬진강 하구와 하동의 화력발전소가 있는 갈사만을 조망하고 외망포구를 향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호남정맥의 마지막 종착지 광양의 망덕 외망포구(14:50)에는 특별한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느 바닷가의 어촌 풍경처럼 해변가 길을 따라 횟집이 즐비하지만 토요일 오후의 겨울이라 분위기는 황량하였고 해변가에는 관광지 조성을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그 곳에 있어야 할 거대한 호남정맥 표지판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망덕산 등산로 입구에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습니다. 이제는 호남정맥 길을 더 갈래야 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로써 내가 모두 다 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광양 외망포구에 무사 안착하여 일행들과 호남정맥 완주의 기쁨을 나누는 축하연을 위해 광양시내의 삼대 불고기 집으로 이동하여 모처럼만에 알코올에 흠뻑 취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한 일정과 코스를 빈틈없이 계획하여 추진해 준 호정추위원장 산타나와 매 회 선두에 서서 험난한 길을 뚫어내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일행들을 이끌어 준 산행대장 감자바우가 있어 이런 영광스런 결과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두분 아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함께 했던 만리향, 고고, 비트 그리고 기동님께도 깊이 감사 드리는 바입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호남정맥 완주를 기념하는 쫑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금남정맥도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