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3. 6. 29 (당일)
■ 어 디 를 : 낙남정맥 1구간 (지리산 영신봉~고운동재)-영신봉, 삼신봉, 외삼신봉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맑고 운무 많음
■ 정맥 산행시간 : 6시간 00분 (1구간:6시간 00분), 접근 시간:3시간 40분
1일차 지리산 영신봉 (8:25)→고운동재 (14:25) 6시간 00분
■ 정맥 산행거리 : 12.0 Km (1구간:12.0 Km)
접근거리 : 거림→지리산 영신봉 6.0 Km
■ 총 산행거리 : 거림→세석대피소→영신봉→음양수→삼신봉→외삼신봉→고운동재 (약18.0 Km)
낙남정맥은 1대간 9정맥 중에서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써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 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 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에서 끝이 납니다. 서쪽에서는 섬진강 하류와 남강 상류를 가르고 동쪽에서는 낙동강 남쪽의 분수령산맥이 되며 연결되는 주요 산들로는 옥녀산, 천금산, 무량산, 여항산, 광로산, 구룡산, 불모산등으로 그 길이는 약 200Km나 됩니다.
낙남정맥은 9정맥 중 거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접근이 용이하고 산세 또한 그다지 험난하지 않아 시간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고집통 혼자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완주해 보고 싶은 구간입니다. 가공산악회에서는 추진하던 금남정맥을 졸업하였고 2개월 후에 금북정맥을 잇겠노라고 합니다. 삼성산악회에서 운영하는 낙동정맥도 딱 2구간이 남아 그 끝도 보여가고 있습니다. 정맥길 이어가기에 공백이 생기면 걸음이 둔해 질것 같아 시간만 허락된다면 낙남정맥을 연결해 놓고 그 끝이 언제가 된지는 몰라도 2, 3개월에 한번씩이라도 걸음을 주어 서서히 진행해보고 싶었습니다.
6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시간, 약간의 취기가 있는 마눌님께서 신랑 고집통에게 주말의 자유를 선언해줍니다. 시간이라는 놈이 생겼으니 새벽 2시에 배낭 챙겨 들고 지리산을 향했습니다. 하루 동안 지리의 품에 안기기에는 거림을 출발하여 세석을 통해 천왕봉 찍고 중산리로 하산하는 일정이 무난할 것 같아 무조건 거림으로 승용차 머리를 돌렸습니다.
희멀겋게 날이 밝아 거림골(4:47)의 새벽은 적막강산입니다. 실상사 근처에는 울타리 안에 갇힌 새끼 부르는 어미염소의 울음소리가 애절합니다. 접근하여 카메라 후래쉬를 터트려도 도망을 가지 않습니다. 천팔교, 북해도교. 세석교등 수시로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계곡산행이 이어진다 하겠습니다. 어렵지 않게 세석대피소(7:25)에 도착하여 라면을 끓이고 있으니 백무동에서 올라오신 한 무리의 산님들이 라면냄새에 감탄을 하며 입맛을 다십니다. 대피소 관리실에 가서 라면을 사오면 코펠과 버너를 빌려주겠다니 빛과 같은 속도로 라면을 들고 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습니다. 작전을 급 수정하여 지리산에 든 김에 낙남정맥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피소 바로 위 영신봉 정상을 향했습니다. 영신봉(8:25) 정상은 비지정탐방구간으로써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구역이기에 누가 볼 새라 얼른 밧줄을 뛰어넘어 정상의 바위에 올라 쎌카로 인증을 남기고 후다닥 뛰쳐나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고집통은 아홉 정맥 중 다섯 번째로 낙남정맥에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1년 6개월은 족히 걸리고도 남을 거리지만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힘 입지 않고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고집통 혼자만의 산행으로 완성해볼 계획입니다. 약간 무모할 것 같아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거대한 바위 양쪽 틈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려 가운데로 합수하여 음양수(8:56)라 하는데 어느 쪽이 음수이고 어느 쪽이 양수인지 몰라도 두 물줄기를 컵에 합수 시켜 머리 숙이고 나만의 의식을 했습니다. 지갑 속의 로또 1등 당첨이 첫 번째이고 낙남정맥 안전산행을 두 번째로 기원했습니다만 그런데 로또는 이미 물 아래로 가버렸으니 앞으로 진행할 낙남정맥의 안전산행에 기대를 걸어야겠습니다.
맑았던 남부능선에 하얀 구름이 몰려옵니다. 본래 남부 능선을 걸으며 뒤돌아보는 지리 주능선이 일품인데 그 모든 것이 구름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거대한 석문(9:35)을 지납니다. 시시각각으로 구름의 형상이 변해 가끔씩 발 아래 대성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세석에서 청학동까지의 거리가 정확하게 10Km이다 보니 이정목에 표시된 양방향거리 표시가 정확하게 저울질이 됩니다. 내가 걸어가는 만큼 청학동의 숫자는 줄어들고 세석은 멀어져 갑니다.
고사목들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 삼신봉이 가까워 졌나 봅니다. 남부능선에 산님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분의 산님이 지나가고 그 다음 두분, 이어서 세분이 스쳐 지나갑니다. 삼신봉(11:24) 정상에는 청학동에 사신다는 중년신사 몇 분이 자리잡고 앉아 오가는 산님들의 말벗이 되어주시고 엄청 많은 잠자리 떼가 날고 있습니다. 왜 혼자 산을 다니느냐고? 심심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혼자 심심하게 다니는 것이 좋아서 혼자 다닌다고 했습니다. 거제에서 왔다니까 우리나라 조선경기 침체와 중국의 추월에 많은 걱정을 해 주십니다.
삼신봉 삼거리에서 외삼신봉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다 청학동 삼거리에서 비지정탐방구간으로 들어가야 하나 하필이면 삼신봉 오르는 쉼터가 마련되어있어 청학동에서 올라오시는 많은 산님들이 쉬고 있습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들어갑니다. 외삼신봉(12:00)에는 두 분의 산님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일주일을 정상에서 머물고 있다 하시고 또 한 분은 거림에 사시는 분으로써 나중 산행을 마치고 내대리에서 거림까지 태워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외삼신봉에서부터의 낙남길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구간으로써 처음부터 바위 릿지가 시작됩니다. 밧줄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국공이 철거해버렸는지 나무뿌리와 돌부리를 잡고 내려가야 해 아주 위험한 구간입니다. 조금 전 외삼신봉에서 만났던 산님께서 먼저 내려가셔서 던져놓은 스틱을 주어주시며 바위 턱과 나무뿌리 잡을 곳을 친절하게 안내해 줍니다.
거의 외길 수순이라 길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단지 조금 전 남부능선은 관리가 잘 된 길이고 지금 가고 있는 낙남길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산죽이 가는 발길을 잡아 당깁니다. 약 1,200m 고지대 능선의 산죽은 그다지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아 통과하기가 수월합니다. 묵계치를 향해 고도를 점점 낮추니 산죽이 내 키를 훨씬 넘어서게 되고 정면 돌파하여 헤쳐나가기는 완전 무리입니다. 당연히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며 산죽터널을 지나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산죽. 온통 산죽 천지입니다. 전국 방방곡곡 산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이렇게 넓은 면적과 빽빽하고 많은 양의 산죽은 처음입니다. 산죽터널 속에는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습니다. 허리는 구부려야 하고 얼굴은 들어 올려야 하니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으며 호흡하기가 곤란해집니다. 얼굴과 목 그리고 팔뚝에 산죽 줄기가 무자비하게 훑으면서 지나가고 거미줄도 척척 걸립니다. 잠깐만 방심하면 촛대뼈에 넘어진 나무등걸이 사정없이 후려 갈깁니다. 마음 같아서는 묵계치(13:15)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묵계치는 삼신봉 터널 상부라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묵계치에서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만 합니다. 언제나처럼 마지막 고비가 정말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끝이 없을 줄 알았던 산죽터널도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 가는지 가끔 잡목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참을 급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국공에서 막아놓은 철망 울타리를 만납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고운동재(14:26)입니다.
공교롭습니다. 철망 앞에 도달하자마자 짙은 아이보리색깔 국공 복장을 입은 아저씨 한 분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운동재 차도을 따라 걸어오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지만 동시에 눈이 서로 딱 마주쳐버리고 어이쿠 걸렸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저씨 힐끔힐끔 바라만 볼 뿐 그냥 지나갑니다. 휴우~. 놀란 가슴 쓰다듬으며 빠르게 철망을 뛰어 넘으려니 배낭이 철망에 걸리고 바짓가랑이도 걸리고 난리 부르스입니다. 고운동재 도로변에 앉아 땀을 식히며 어떤 식으로라도 자동차 히치를 해보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도대체 지나는 차는 없고 무슨 영문인지 아저씨, 아줌마, 아가씨, 학생들이 작렬하는 태양열에 아랑곳없이 도로를 왔다 갔다 하고 있어 무슨 특별한 걷기 행사라도 하느냐고 여쭤보니 운동을 하고 있답니다. 나 고집통도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지만 그 참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운동재 바로 너머 지리산 양수 발전소 상부 댐이 있는 막다른 장소일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자동차가 뜸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트럭 한대가 고운동재에 멈춰서고 아저씨 한 분이 조금 전 내가 내려온 방향의 철망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 양반이 날 잡으러 왔나? 또 바짝 긴장하며 배낭을 메고 슬금슬금 벗어나는데 트럭이 내 뒤를 따라 오고 있습니다.
에이! 벌금은 벌금이고 이 차를 놓치면 거림에 갈 일이 까마득하여 무조건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태워 달라 했습니다. 아저씨는 지리산 인근의 사찰에 건축 일을 하시다가 고운동재에 친구분이 나무아래 잠들고 있어 올라가지는 못하고 길가에서 잠시 친구를 생각하다 가신다며 아주 친절하게도 내대리 삼거리까지 태워주시고는 시야에서 멀어져 갑니다. 사장님! 복 많이 받으십시오.
내대리 삼거리에서 거림까지의 거리가 아주 어중간합니다. 다시 한번 히치에 도전하니 이번에는 차량통행은 많으나 도저히 차를 세워주질 않습니다. 청학동 방향에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내 앞에 멈춥니다. 외삼신봉에서 스틱을 주어 주시며 친정을 베풀어 주셨던 그 산님께서 청학동으로 하산하셔서 거림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나를 또 만난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오늘 두 번씩이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행복하십시오. 호남길에서도 그랬고 낙동길에서도 그랬듯이 이번 낙남길의 첫 구간도 고집통 홀로 걷는 산행을 하였습니다. 약간 힘든 산행이었지만 또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생각하니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어차피 낙남길은 혼자의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었으니 세상 구경과 함께 사색을 즐겨가며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볼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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