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4. 1. 11 (당일)
■ 어 디 를 : 금북정맥 5구간 (곡두고개 ~ 차동고개) - 태화산, 봉수산, 극정봉
■ 누 가 : 가공산악회 13명 그리고 고집통
■ 날 씨 :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32시간 50분(5구간:10시간 10분)
4일차 곡두고개(7:30)→차동고개(17:40) 10시간 10분
접근거리:곡두터널→곡두고개 10분
■ 정맥 산행거리 : 85.3 Km (5구간:23 Km) 접근거리:0.5 Km
■ 총 산행거리 : 호계터널→곡두고개→태자산→갈재고개→각흘고개→봉수산
→천방산→부엉봉→극정봉→절대봉→차동고개 (약 23.5 Km)
갑상선 그것 정확하게 그 역할을 알 수는 없으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1개월 남짓을 꼼짝하지 않고 보낸 세월이 있어 체력이 많이 저하된 이유도 있겠지만 이번 금북정맥 길은 내겐 아주 고통스런 길이었습니다.
수술 후 몸이 채 만들어 지기도 전에 나서는 장거리 산행 길이라 가지 말았으면 하는 마눌님의 걱정 어린 만류가 있었지만 내 마음이야 지구를 열 바퀴라도 돌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나서기로 했습니다. 지난 12월 금북정맥 4구간도 빼먹었기에 후일 한꺼번에 두 구간을 땜빵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를 것 같아 이번에 굳이 정맥길에 나서야만 할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지명조차 생소한 충청도 외진 땅인 곡두고개의 호계터널(7:20) 앞에 내가 서 있고 그 곳의 아침공기는 차가우며 밤새 약간 눈까지 내린 상태입니다. 629번 지방도가 지나는 호계터널에서 약 10여분 거리에 있는 금북정맥 5구간 시작점 곡두고개(7:30)까지 올라가는 것 조차 숨이 할딱거려 오늘 산행이 약간 걱정이 됩니다.
출발과 동시에 시작된 까막봉의 급경사는 준비 안된 내겐 체력적으로 아직 무리임을 깨닫게 합니다. 낙엽 위에 쌓인 눈으로 인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이내 아이젠을 착용하도록 합니다. 시작하자마자 급경사 때문에 깜짝 홍역을 치르고 나니 지도에는 없는 까막봉(8:00) 557m 라는 이정목이 나옵니다. 수술 후 워밍업 차원에서 도전해 본 거제의 계룡산과 높이가 일치한 데 아직까지 내 신체는 가뿐하게 받아주니 걱정과는 달리 일단은 안심을 해봅니다.
오래간만에 밟아보는 눈 소리가 경쾌하게 들립니다. 태화산 천자봉(8:40)은 금북정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가까운 거리이기에 잽싸게 들렀다 갈재고개로 내려옵니다. 선두권은 휴식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듯 갈재고개(9:00)를 지나치고 각흘고개를 향해 내달립니다. 휴우~. 한숨이 나옵니다.
국기봉이 있는 헬기장(9:40)을 지나고 각흘고개(10:04)까지 한참을 내려갑니다. 이쯤에서 양 쪽 발가락이 살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급경사 내리막길에 발이 앞으로 쏠리는데다 아이젠으로 발 볼이 쫄려진 연유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아무래도 발톱 몇 개 탈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일행들의 꽁무니를 힘겹게 따라가다 너무 지쳐 봉수산 정상에 다녀오는 일은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산타나의 멋진 정상석이 있다는 소리에 솔깃하여 배낭을 벗어놓고 마구 달려 가보았습니다. 마침 봉수산(11:40)정상에는 부부 산님이 맛나게 라면을 먹고 있어 염치 불구하고 사진 한 장 찍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극정봉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겠다는 대장님의 소리에 늦지 않으려고 정말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왼쪽 허벅지에 경련이 살살 밀려 오기 시작합니다. 경련에 대처하는 요령은 익히 알고 있어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자박자박 걸어 나무의자 여러 개가 준비된 460봉에 올랐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쯤에서 점심식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나의 기대와는 달리 한참을 더 진행하고도 그다지 넓지 않은 365봉 산꼭대기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일행들은 자리를 깔고 앉아 있습니다. 비탈진 자리에 의자를 펴고 앉으려니 짝 다리가 되면서 허벅지에 쥐가 몰려오고 뭔가를 좀 먹어보려 하니 목구멍이 아무것도 받아주질 않습니다.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으니 천방산 정상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로 약속하고 일행들보다 한 발 먼저 출발합니다. 그래 봤자 얼마 가지 못해 일행들은 바람처럼 휙 스쳐 지나가고 나는 또 후미에 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밥 먹으면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홀짝홀짝 마셔대다 상태가 나빠져 버린 산타나가 뒤에 따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방산(13:40)에 가서 단체사진 찍기 위해 기다렸는데 산타나는 삼거리에서 천방산을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믿었던 산타나가 가버렸으니 또 꽁지가 되어버렸고 혼자 남지 않으려고 마구 뛰었습니다.
지금부터 빨래판 능선입니다. 약10분 간격으로 봉우리를 한 개씩 쳐냅니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나타나는 봉우리, 봉우리들이 사람을 충분히 질리도록 만듭니다.
부엉산(14:05), 오지재(14:42), 극정봉(15:16)을 지납니다. 일행들은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은 산타나랑 함께 걷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나지만 산타나의 상태가 썩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로써는 천만다행입니다. 명우산(15:52)을 지나고 정상석 바로 아래 땅이 움푹 패여 자연동굴이 생긴 절대봉(16:10)에 도달해서야 시간을 내어 남은 거리를 가늠해 보니 목적지인 차동고개까지는 아직도 감감합니다. 가다 쉬기를 여러 번 한 후에야 등로 인근의 공동묘지로 통하는 임도도 보이고 머지않은 곳에서 차량 지나가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어느새 짧은 겨울의 해는 산능선 뒤로 사라져가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차동고개에 도착한 산행대장님에게서 바리바리 전화가 걸려옵니다. 일행들이 우리로 인해 많이 기다린다 생각 들면서 마음이 바빠지니 이제는 허벅지의 쥐도 사라지고 발가락도 아프지 않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등로의 눈이 거의 다 녹고 질척질척해 졌습니다. 아이젠을 벗고 완만한 능선길을 힘 닿는 한 내달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94.2봉을 지나고 바로 차동고개(17:40)에 내려서게 됩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의 따뜻한 박수와 격려가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오늘 갑상선 암을 수술하고 처음 나서는 장거리 산행에 하필이면 빨래판 능선을 만나 오지게 고생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1대간 9정맥종주를 목표로 하고 도전했기에 중도 포기할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몇 년이 걸려서 끝날지 모르는 기간 중에 건강이나 집안일이 어떠한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으니까 종주자체가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도 했습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리니까 나 고집통은 이 정도의 아픔은 당연히 이겨 내야 되겠고 충분히 이겨 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새끼발가락 두 개가 퉁퉁 부었고 발톱 밑이 새빨갛게 피 멍이 맺혀 있습니다. 아무래도 살려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러다 내 발가락 큰일 나겠습니다. 시급하게 등산화를 바꾸든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6구간 나서기 전에 체력과 근력을 정상궤도에 올려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고 4구간 땜빵 스케줄도 잡아야겠습니다.
앞으로 내가 해야 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정초부터 나도 모르는 고약한 구설수를 탑니다. 구설수라는 놈은 갑상선암 수술 받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주위에 아군을 가장한 적군이 우글거립니다. 올해는 건강조심도 중요하지만 사람 입 조심에 신경을 더 써야겠습니다.
『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필요 없는 말이 섞여 나온다. 귀는 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입은 언제라도 닫을 수 있다. 자신에 관해서 너무 많이 말하지 마라. 어느새 거짓말이나 과장이 섞이게 된다. 사람들은 결국 진실을 알아차리고 너를 멀리하게 된다. 화가 날 때에는 침묵을 지켜라. 화날 때에는 누구나 제대로 말하기가 어렵다. 불길이 너무 강하면 알맹이는 익지 않고 껍질만 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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