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4. 4. 26 (당일)
□ 어 디 를 : 금북정맥 4구간 (성요셉요양원 ~ 곡두고개) - 국사봉, 봉수산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72시간 14분(4구간:9시간 26분)
9일차 군부대철조망(7:15)→곡두고개(16:41) 9시간 26분
접근거리 : 압실마을→군부대 철조망 23분, 곡두고개→호계터널 5분
□ 정맥 산행거리 : 189.2 Km (4구간:22.2 Km), 접근거리:약 1.5 Km
□ 총 산행거리 : 압실마을→군부대철조망→국사봉→국수봉→차령고개→인제원고개→봉수산→개치고개→곡두고개→호계터널 (약 23.7 Km)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가슴으로 팍팍 와 닿습니다. 7월이면 금북정맥 졸업이 예정되어 작년 12월에 예기치 못했던 갑상선 암 수술로 정맥길 이어가기에 이빨이 빠져버린 금북 4구간이 항상 마음에 거슬렸습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땜빵 산행을 위해 금요일 저녁 8시 대전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찜질방 마루바닥이 너무 불편해 제대로 눈 한번 붙여보질 못하고 이른 새벽 대전역에서 세종시의 전의읍으로 가기 위해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5:57)를 탔습니다. 대구에서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러 서울에 가신다는 옆자리의 팔순 할머니께서 등산복차림의 나를 보시고는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며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할머니 말씀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보니 열차는 어느새 전의역(6:38)에 도착합니다. 시골의 작은 읍인 전의역에는 내리는 손님과 타는 손님을 통틀어 달랑 고집통 혼자뿐입니다. 전의역전에 대기중인 택시에 손짓하니 쏜살같이 발 앞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아니었다면 허탕칠뻔했던 택시기사님께 양곡2리 마을회관을 말하니 『아~! 압실마을요』하면서 금방 정맥꾼임을 눈치챕니다.
본래대로라면 성요셉요양원에서 금북정맥 산행을 시작하여야 하나 군부대가 금북정맥을 점령하고 있어 정맥길이 끊어져 버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대간길의 진부령에서 향로봉 구간에 이어 정맥길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 거리만큼 도로를 따라 우회하여 걸어간다는 것도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니 선답자들이 해왔던 것처럼 그냥 양곡2리 압실마을(6:52)에서 군부대 철조망이 있는 금북정맥 능선까지 접근하여 오늘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명산사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에 송아지만한 시커먼 도사견(불독)이 누워있고 군복 입은 아저씨가 한 손은 털을 만지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야전삽을 들고 있습니다. 주위에 개털도 듬성듬성 빠져 있어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아침부터 한 마리 잡는구나 생각하며 무심결에 지나치는데 갑자기 도사견이 벌떡 일어나더니 으르렁거리며 내게 달려들 듯 합니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치며 쏜살같이 도망쳤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당할 뻔 했습니다. 기분 좋게 드러누워 털 고르기를 하는데 내가 방해가 되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비닐하우스 집 명산사 옆을 지나 선답자 시그널의 안내를 받아가며 곧바로 산중으로 들게 되고 제법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니 군부대 철조망(7:15)과 맞닥뜨리게 되고 철조망에서 오른쪽 방향을 따라 본격적으로 고집통 홀로 만의 금북정맥 4구간 땜빵 산행이 시작됩니다.
이른 새벽에 찜질방을 나섰기에 오늘 산행시간은 충분한 여유가 있을 것 같고 혼자 하는 땜빵 산행 경험상 항상 시작은 좋았으나 막판에 녹초가 되어버렸기에 그 경험을 선생 삼아 천천히 진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늘 작전 자체는 그럴듯했으나 현실은 종전 경험이나 마찬가지로 쌩 고생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쇠뇌골을 가운데 두고 U자 형태의 정맥길을 가게 됩니다.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는 몰라도 거대한 송전철탑들이 금북정맥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산 중에 웅~웅~ 거리며 울려 퍼지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나는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라 착각했는데 알고 보니 바람맞은 송전선로가 슬피 우는소리였습니다. 밀양의 할매, 할배가 목숨 걸고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국사 봉(8:25)에 들러 잠깐 여유를 가진 후 여세를 몰아 삼각 점 표지판이 있는 국수봉(9:14)까지 내달립니다. 초반 작전은 무조건 천천히였는데 금새 잊어버리고 죽을동 살동 걸어가고 있습니다.
댕강댕강 잘린 밤나무 가지 끝에 비닐조각이 나풀거립니다. 유심히 바라보니 손가락 크기의 나뭇가지 접붙이기가 되어 있습니다. 개량종 밤나무로 바꿔 치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산꼭대기가 아닌 밤나무 밭에 삼각점(9:40)을 설치해 놓은 곳을 보기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차령고개(10:30)는 충남 공주와 천안을 잇는 도로에 있으며 높은 고개라는 뜻을 가진 수리고개에서 수레고개로 변했다가 한자 이름을 따 차령이 되었다는데 바로 아래 23번 국도에 차령터널이 뚫린 이후로 차령고개에는 차량통행이 현저히 줄어버렸고 그러니까 당연히 휴게소는 폐쇄되어버렸습니다. 차령산맥 또한 이 차령에서 이름을 따 왔다 합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봉우리에 새해 해맞이 면민안녕기원비와 망배단이란 제단(10:45)이 있습니다. 광덕면 면장님의 면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이 묻어납니다. 쌍령산이라고도 하는 봉수산정상(10:54)에 올라 대전역 근처 「경상도떡집」에서 산 찹쌀떡으로 점심식사를 때우기로 합니다. 찹쌀떡으로 때우는 끼니해결은 배는 든든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인제원고개(11:22) 왼쪽 편은 골프장에서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으며 바로 아래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터널이 지나고 있어 자동차 달리는 굉음소리가 온 산을 울리는데 프린세스GC에서 여유롭게 골프를 즐기시는 사장님들 귀에는 그 소음 정도는 음악소리로 들리는 모양입니다.
430봉(14:12)의 급한 경사를 치고 오르는데 살살 체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옵니다. 장고개를 지나고 개티골 먼발치에 사당 비슷한 작은집을 보며 지납니다. 점점 앉아 쉬는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하고 쉬는 방법도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게 됩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초기 진행속도가 좋았기에 곡두고개까지 계획대비 한참 빨리 도착해질 것 같아 요령이 생기면서 그냥 길가에 드러누워봅니다. 아무도 없는 산 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생각했는데 30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351봉(15:10)에서 다시 한번 누웠더니 또 30분이 후딱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1시간도 더 시간을 까먹었습니다.
산불지역에서는 집게형 포크레인이 급경사 산비탈에서 구르지 않고 불 타 잘려진 나무들을 잘도 집어 내립니다. 정신상태가 풀리면 몸도 따라서 풀리는 법입니다. 480봉 오름 길에는 체력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다리가 전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고도표상 곡두고개까지는 딱 네 개의 봉우리만 넘으면 되는데 너무 힘들어 샛길이 있다면 그냥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샛길은 없습니다. 산성마을에서 공주 가는 5시반 버스를 타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니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아도 무의식 중 마구 달려지게 됩니다. 몸은 마음을 따르기 마련이니까 매사 마음먹기 나름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천신만고 끝에 곡두고개(16:41)에 도착함으로써 금북정맥 여덟 번째 4구간 땜빵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고 산성마을(16:50)에 도착하니 버스시간에 아직 약간의 여유가 남았습니다.
마을 주민께 양해를 구해 가정집 마당의 수도꼭지를 빌려 깔끔하게 씻고 공주로 가는 시골버스에 올라탈 수가 있었고 다시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하고 마지막으로 거제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 반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땅은 어찌 보면 엄청 넓고 어찌 보면 엄청 좁습니다. 가지 못한 금북정맥 한 구간이 눈엣가시처럼 남아있어 항시 마음이 쓰였었는데 비록 심신이 고달픈 땜빵 산행이었지만 마무리를 짓고 나니 삼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후련합니다. 혼자 진행한 이번 땜빵산행은 비록 힘은 들었지만 나름대로 보람도 있는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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