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15. 1. 04 (당일)
■ 어 디 를 : 낙남정맥 8구간 (큰재 ~ 발산재) – 백운산, 깃대봉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맑음
■ 정맥 산행시간 : 58시간 47분(8구간:8시간 40분)
8 일차 큰재(7:02)→발산재(15:42) 8시간 40분
■ 정맥 산행거리 : 132.6 Km (8구간:20.7 Km)
■ 총 산행거리 : 큰재→백운산→장전고개→배치고개→탕근재→필두봉→남성치→벌발들 →깃대봉→준봉산→발산재 (약 20.7 Km)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다쳐 날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아한 자태로 하늘을 날 때야 하늘의 제왕으로써 위엄을 떨치지만 땅 위에서는 결국 맹수의 밥이 되고 말 것이기에 마음이 꽤나 아픕니다. 그렇지만 내가 도와 줄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번 무량산에서 큰재로 내려오지 못하고 유흥리로 잘 못 하산하였기에 오늘 산행을 무량산 정상에서 시작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냥 큰재를 낙남정맥 여덟 번째 산행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큰재(7:02)를 출발하여 가파른 백운산을 오릅니다. 백운산(7:33) 정상에서는 멀리 바다를 접한 작은 도시 고성읍이 희미하게 조망됩니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지나는 장천고개(7:53)에 내려서니 대나무 밭 뒤로 2015년의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일출은 어디서든 느낌이 새롭습니다.
지난 낙남정맥 때 길을 잘못 들지만 않았었더라면 이곳 장천고개까지는 충분히 왔을 것을 그로 인해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약간 길어졌습니다. 장천고개에서는 편한 길을 택해 임도를 따라 쭈욱 올라갑니다.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지 않아 혹시나 알바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산정의 철탑을 만나고 나서야 안도했습니다. 정맥길 좌측의 높은 산은 고성 명산 연화산인 모양입니다. 덕산(9:00)에는 산돼지 목욕탕이 있고 주위 소나무에 온통 황토 흙 칠갑을 해 놓았습니다.
배치고개(9:35)를 경계로 금렵구와 수렵구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배치고개에 RV 차량이 한대 대기해 있고 무전기소리와 함께 호루라기 소리가 「삑삑」 산중에 울려 퍼집니다. 지금 내가 수렵구에 들어와 있고 엽사랑 사냥개가 멧돼지를 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냥총을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스마트 폰 속 음악을 최대한 크게 틀었습니다. 내일 모레면 소한인데 절기에 걸맞지 않게 날씨가 봄 날씨처럼 따뜻합니다. 눈길을 땅바닥에 집중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매봉산을 오르는데 발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흠칫 놀라 소나무 옆으로 바짝 붙어 섰습니다. GPS 안테나를 목에 장착한 사냥개 한 마리가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라 마주 노려보며 부드러운 소리로 『강아지야! 저리 가라~, 강아지야! 저리 가라~』몇 번을 그렇게 이야기하니 사냥개가 긴장을 풀더니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 거리며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 내 주위를 삥 돌아서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나도 놀라고 사냥개 저도 놀란 것 같습니다.
탕근재(10:45)를 오르는데 뒤쪽에서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냥꾼들이 뒤를 따라오나 생각했는데 봉광산(11:02) 정상에서 한 무리의 산님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부산에서 오신 낙동산악회 회원님들이시고 낙동산악회는 백두대간과 여러 정맥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마루금 전문 산악회입니다. 낙동산악회의 오늘 산행 종착지가 나 고집통과 같은 발산재까지 입니다. 혼자 가는 것 보다는 말동무하며 바짝 달라붙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발걸음을 함께 맞추기로 했습니다.
필두봉(12:09)에서 날개 꺾인 독수리를 발견했습니다. 날지는 못해도 걸을 수는 있습니다. 주위 철탑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하늘을 날다 전기 줄에 걸려 떨어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동료 독수리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산 정상을 빙빙 돌고 있습니다. 먹이라도 좀 줄 양으로 곁으로 가까이 가면 도망치기 바쁩니다. 그냥 두고 가기에 마음이 아파 고성군청 당직실로 전화 연락을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담티재(12:45)에 내려서니 야생동물 보호소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연락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은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420m 필두봉 정상에 있는 독수리를 어쩌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필두봉을 떠나지만 독수리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염원을 가져봅니다.
용암봉(13:09)에 올랐다가 남성치(13:26)로 내려갔다 다시 벌발들(14:00)을 오릅니다. 정확하게 200m 높이의 고도차를 가지고 있어 나도 나지만 전문가들이신 낙동산악회 회원님들도 많이 힘들어합니다. 흔히 이야기 하는 빨래판 마루금입니다. 선동치(14:08)에서 마주 오던 산님이 내게 길을 물어와 지도를 확인해보니 지척에 고성과 창원의 경계선에 위치한 적석산이 있습니다. 수년 전 나 고집통이 적석산 산행을 하면서 언젠가 낙남정맥을 할 때면 이 길을 지나갈 것이니 꼭 기억해 두겠다고 했던 그 벌발들과 선동치에 내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내가 이곳에 왔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가면 깃대봉에 오를 것이고 준봉산을 지나면 발산재에 내려서게 되니 오늘산행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지막 힘을 내봅니다. 깃대봉(14:35)은 이름처럼 생긴 모양이 쪼삣합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그 다음 봉우리는 기대봉입니다. 준봉산(15:03)을 거쳐 발산재(15:42)의 수발사 입구로 하산하면서 낙남정맥 여덟 번째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본래대로라면 발산재의 동물 이동통로 위로 바로 내려서야 하나 2번 국도 확장공사로 깎아지른 언덕배기가 생겨 사람은 고사하고라도 동물조차도 도저히 갈수가 없는 그런 길이 되어 있습니다. 옛 기억으로는 발산재에 폐쇄된 휴게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 산행에 대비하여 진주-마산간 4차선 2번 국도 굴다리를 지나 산행 들머리를 확인해 놓았습니다.
고집통 홀로 낙남정맥을 시작한 이래 매회 별의별 우여곡절을 다 겪었었는데 오늘은 독수리를 만난 일 외에는 무난한 산행을 한 것 같습니다. 이어질 낙남길에는 여항산, 광려산 그리고 무학산등 경남의 명산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아마도 꽃피는 봄날 즈음이며 마산의 자랑인 무학산을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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