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아름다운 거제산

[거제] 살짝 발 올려 본 거제남북지맥 - 국사봉 [464m]

산안코 2009. 6. 6. 14:15

 

오늘은 토요일에 현충일입니다. 나 같이 순진한 월급쟁이는 하루의 휴일을 도둑 맞았습니다. TV에는 현충일 기념식이 진행이 한창입니다. 내 생에 TV에서 그런 형식적인 기념식을 본 적이 없는데 희한하게 내가 지금 그걸 보고 있습니다. 게을음 부리다가 5월의 대간길에서 식겁먹고 바짝 긴장이 되어 짬나면 산에 가야지 하다가 오늘은 조금 장거리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옥포 소방서에서 국사봉으로 그리고 옥녀봉을 지나 대우병원 앞으로 하산하면 약 다섯시간 정도는 걸리겠지 어림짐작하며 오늘 다리 힘 한번 올리기로 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충무김밥은 전부 원조입니다. 고현버스터미널 근처에서 1인분 주문하니 주인 아지매 조금 적을 것이라며 살짝 유도합니다. 4,000원짜리 김밥이 혼자 먹는데 적다면 이건 순전이 밥 가지고 장난치는 사기입니다.
패트 맥주 1통 집어 넣고 옥포행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집에 올때 버스비가 1,000원이니 오늘 10,000원짜리 1장으로 혼자서 잘도 논 셈입니다. 

옥포소방서 앞에 내려서니 옛날에 있었던 국사봉 이정표가 없습니다. 한참 왔다 갔다 두리번거리다가 결국에는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서 길을 찾았습니다.
순교자 윤요셉이 묻혀있는 순교자의 길을 오르노라니 양복 입으신 분, 수녀님등 다수의 인파가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아마도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 순례를 하시나 봅니다. 

순교자의 묘지를 지나고 거제동서지맥 구간과 연결되는 작은골재를 오르기 까지는 뒷통수에 땀방울이 뚜두둑 떨어진다. 수월재를 지나 체육시설이 잘 되어있는 큰골재에서 다수의 아지매가 기구를 이용하여 온몸을 비틀어댑니다. 

국사봉 정상에 올라서니 작년까지 없었던 흉한 팔각정 전망대가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꼴보기가 싫어 그냥 지나칩니다. 

정상너머 시끌시끌합니다. 아지매 세명이 자리깔고 산꼭대기에서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지 대화수준이 아닙니다. 조금 외진곳에서 원조충무김밥을 꺼집어 냈습니다. 오징어 다리가 너무 굵어 무서워서 도저히 입에 넣지를 못해 개미밥으로 처리했습니다.
국사봉 아래 팔각정에도 아지매들이 꽉 차 있습니다. 요즘은 아저씨들은 다 어디로가고 아지매들만 산으로 올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엉덩방아를 제대로 한번 찍었습니다. 내 팔자에 그러라고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명재쉼터에서 옥녀봉삼거리가 있는 515봉까지는 까끄막이 제법 심합니다. 가는 길에 전망대에 들러 대우조선해양을 조망하고 맥주도 비우고 뱃속의 짐도 조금 비웠습니다.
오늘 내가 넘어가야 할 옥녀봉 조망도 여기서는 아주 그만입니다. 

옥녀봉 삼거리 도착해보니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전에 눈여겨 보았던 새로운 길이 내 눈에 딱 꼽혀 버린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길로가면 거제남북지맥으로 연결되는 복골농원 입구의 배합재가 나올것이리라는 확신이 나를 흔들어 버렸습니다. 옥녀봉은 뒤로 미루고 오른쪽으로 발길을 자연스럽게 돌려 버렸습니다.
처음은 길이 좋았습니다. 거제시에서 만들어 놓은 길 옆 벤치도 있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점점 길이 흐려져가고 나중에는 그냥 나무 무성한 산 중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노랗고 빨간 시그널만 이리저리 찾아서 따라 갈 뿐입니다. 용케도 "한백회" "산정에 핀 에델바이스 가슴에 피고지고 정아"의 시그널들이 나무에 연속으로 걸려있어 따라 갈수 있었으나 분명 길은 아닙니다. 

한참을 내려가니 거제시에서 잡목 정리를 하느라 사람들이 올라왔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움직이기가 쉬워졌으며 결국에는 내가 예상했던 차량들이 쌩쌩 달리는 배합재가 나왔습니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거제남북지맥의 일부를 선답사 한것입니다.
해는 중천에 있고 시간은 오후 4시이니 마음 먹은김에 선자산에 올라보자는 마음에 맞은편 산 능성이에 올랐습니다. 시그널도 있고 길도 분명히 있습니다.
약 20분 진행하였을까 그런데 눈 앞의 선자산이 너무 높아 보입니다. 순간 길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 당장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빨리 발길을 돌리라고 난리법석입니다.
정말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다음에 시간내서 하면되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 30분을 그렇게 알바 아닌 알바를 하고 배합재로 다시 돌아와 내 보금자리 방향인 문동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상동까지 걸어내려오니 길이 너무 멀어 뒤를 자꾸 돌아보니 고맙게스리 이쁜 버스가 주차장에 딱 멈춰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