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백두대간·정맥/백두대간[완]

[백두대간 - 8] 대간의 실크로드다

산안코 2009. 8. 19. 13:18

◈ 언            제 : 2009. 8. 15 ~ 2009. 8. 16 (1박 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8구간(추풍령~신의터재)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4명과 고집통
◈ 날            씨 : 8/15(아주 맑고 더움), 8/16 맑음)
◈ 대간 산행시간 : 107시간 46분(8구간: 17시간 15분 )
                        12일차 추풍령(7:25)→큰재(15:45) 8시간 20분
                        13일차 큰재(3:00)→신의터재(11:55) 8시간 55분
◈ 대간 산행거리 : 241.2m (8구간: 44.14Km)
                        12일차: 19.63Km, 13일차: 24.51Km
◈ 총   산행 거리 : 추풍령→사기점고개→작점고개→용문산→국수봉→큰재(우하재)
→회룡재→개터재→윗왕실재→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어산재)(약 44.14Km)

 

지난주 여름휴가 중 화대 지리종주가 준 선물인 발뒤꿈치 물집이 아직 아물지 않았고 또 다른 발뒤꿈치 아킬레스도 여전히 내겐 아킬레스로 다가옵니다. 지리 백리를 걸은 지 불과 10일도 지나지 않아 또 대간 백리 길을 나선다니 회사동료들은 몸을 너무 학대시키는 것 아니냐고 걱정 해줍니다. 난들 왜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1박 2일에 44Km이고 예상되는 8월의 폭염과 좋지 않은 양쪽 발 상태와 최장거리 대간길이니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서지만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앞으로의 대간길에 희망이 보일 것 같아 용기를 내어보기로 합니다. 새벽 3시 대경이가 출발하자마자 산행대장님 오늘의 목적지는 처음 계획된 큰재가 아니고 비박에 필요한 물 사정에 따라 개터재 또는 윗왕실재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상보다 서너 시간은 더 걸어야만 될 것 같아 말은 못하지만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대경이가 너무 쌔게 달렸나 봅니다. 아침식사를 예약한 추풍령의 식당에서는 청국장이 아직 끓지 않고 있습니다. 식당 밖에서 어영부영 시간 잡아먹고 아침 식사로 청국장 백반을 취하니 속이 부담스럽지 않고 맛 또한 깔끔하여 산행 전에 먹는 청국장 맛이 그런대로 일품입니다. 지난번 추풍령 도착할 때 경운기를 타고 갔던 기억이 생각나는 구간입니다. 그 길을 따라 추풍령 기념비까지 약 500m 를 걸어갑니다. 

  

◈ 추풍령 고개 - 백두대간 여덟번째 첫째날 산행 들머리

 

◈ 추풍령에 선 고집통

  

추풍령 출발(7:25)을 기념하는 사진 한 장 남기고 금산 자락으로 줄지어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앞서가던 일행 몇 명이 뒤를 돌아 내려옵니다. 대간길을 약간 벗어난 금산(7:40)정상을 향해 짧은 알바를 한 것입니다. 지난 7월 추풍령으로 올 때 줄기차게 들려 오던 뻥튀기 소리가 이른 아침인데 오늘도 어김없이 주기적으로 뻥뻥 들려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물어보니 주위 석산을 개발하면서 내는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라는데 이 지역 주민들 차~~암 어찌 사시는지? 성인군자만 사는 모양입니다. 그 소리 정말 짜증 제대로입니다. 

매봉재(8:10)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사기점고개(9:10)에 도달해보니 차량 소통이 가능할 폭의 임도가 있고 스틱이 도저히 꼽히지 않을 정도로 흙 땅을 단단하게 다져 놓은 으로 보아 아마도 콘크리트를 깔려나 봅니다. 우측 난함산 정상의 커다란 통신탑으로 길을 연결해 놓은 것 같습니다. 아침이슬로 인해 신발과 바지가 젖어 힘들 것을 예상했으나 잘 다듬어진 대간길이 산행에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 이 고장 지방단체에서 백두대간에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난함산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시멘트 길을 가로질러 숲 속 길을 치고 올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산꼭대기를 찍고 내려왔는데 조금 전 그 시멘트길이 다시 나타나고 한참 동안 그 길을 따라 지루하게 내려가니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연결하는 작점고개(10:05)에 이릅니다.

    

◈ 금산을 향해 출발하는 일행들

 

◈ 배봉재에서 휴식

 

◈ 작점고개 쉼터에서 휴식

 

◈ 작점고개에 선 고집통

  

약 30 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용문산을 향합니다. 최근 지겹게 내리던 비가 멈춘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대간길은 한마디로 각종 버섯들의 전시장입니다.  웬만한 우산 크기의 하얀 놈, 한눈에 보아도 독이 꽉 찼을 법한 시커멓게 생긴 놈, 나무 등걸에 오밀조밀하게 달라붙은 노란 놈, 평소 안면 잘 닦아놓은 영지버섯등등…….  나는 산불감시초소인줄 알았습니다. 비닐로 싸여진 엉성한 움막이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도에는 산불초소가 아니고 기도터바위(11:25)라고 표기되어있습니다. 물론 안에는 사람이 없었고 문은 활짝 열려있어 대간하다 지친 사람들 쉬어 가기에 정말 안성맞춤입니다. 모두들 참 힘들게 걷습니다. 오늘은 왜 이리 하늘이 청명하고 바람 한 점 없는지 잠시라도 틈만 나면 일행들이 드러눕던지 아니면 윗옷을 벗습니다. 용문산 정상(12:45)인지 까맣게 모르고 한참을 휴식하며 점심식사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니 바로 한 발자국 위에 용문산 정상석(13:25)이 버티고 있습니다. 다음 봉우리 국수봉(14:30)까지도 만만찬습니다. 바람은 전혀 없고 땡볕은 가히 계절의 지존답게 맹위를 떨칩니다. 

  

◈ 보기에 아름다운 버섯

 

◈ 더워도 너무 더워

 

◈ 고집통은 별로 안 더움

 

◈ 용문산 정상의 고집통

 

◈ 국수봉 정상의 모습

  

난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연유에서 내 체력이 갑자기 좋아져 있는 건지.  내 위치는 항상 일행들 중 제일 꼬래비였는데 이번만은 그게 아니고 거의 중간에서 걷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폭염에 많은 사람들의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고 탈진상태가 보여 자연스럽게 진행속도가 느려지면서 내 페이스의 걸음걸이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내 속도라면 내가 뒤쳐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랬는가 봅니다.
운영진에서 오늘 일정을 급 수정 들어갑니다. 여러 사람을 살려야 하니까 개터재, 윗왕실재가 아니고 그냥 큰재에서 오늘 일정을 정리하잡니다. 아무래도 큰재에 다 이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온 산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가 앰프를 통해 울립니다. 우리가 비박지로 예정한 옥산초교 인성분교에서 체육대회를 하는 모양이라 추측하며 큰재(15:55)에 내려서니 아니나 다를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잔치판이 벌어졌습니다. 연세 지긋이 잡수신 50대 중반의 아저씨, 아줌마들 옥산초교 21회 동기회의 플랜카드를 걸어놓고 뒤풀이를 하는데 한결같이 노래 실력이 명가수 뺨을 칩니다. 전국의 노래방 사장님들 공덕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입니다.
일찌감치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학교 운동장에 비박 할 준비해 놓고 소주병을 앞에 차고 앉았습니다. 준비성 좋은 기동 이번 술 안주로는 한우소고기 불고기를 준비해 왔습니다. 힘들게 산행했으니 당연지사 최고의 만찬자리가 갖추어져야 하고 멋있는 자리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동과 달콤한 소주에게 항상 고마움의 마음을 갖습니다.
오늘밤도 밤하늘은 너무 깨끗하여 거제에서 쉬 볼수 없는 무수한 별들이 가슴을 설레게 해주어 비박의 참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 683.5봉 모습

 

◈ 큰재 - 백두대간 여덟번째 첫째날 산행 날머리

 

◈ 큰재에서의 고집통 - 옥산초교 인성분교에서 비박

  

다음날 새벽이슬을 털고 학교를 벗어나는 시간이 새벽 3시 정각입니다. 오늘은 무려 24Km의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 마음이 바쁘더니 놀랍게도 내가 선두권에 있습니다. 주위가 컴컴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무조건 앞사람 궁둥이만 보고 내달립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시끌시끌한 음악소리가 온 산을 진동합니다. 틀림없이 시골 교인들의 새벽기도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고 있었는데 목장에서 소들을 위한 음악을 밤새도록 들려 준답니다. 그래야만 인간들이 좋아하는 쇠고기의 마블링이 잘 나와 상품의 쇠고기가 된답니다. 내가 생각할 때 이건 음악이 아니고 소음 수준인데 소들이 스트레스 받아 미쳐버릴 것만 같습니다. 「잔인한 그대 이름은 분명 나쁜 인간이리라」
이 뒤를 돌아보는 형상이라 회룡재(4:15)인데 어두워서 눈에 보이는 것은 없고 어제 비박지로 할까 했던 개터재(4:52)에 도달해보니 식수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제 만약 개터재까지 걸었다면 우린 아마도 모두 퍼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운영진의 탁월한 선택이 여럿을 살린 느낌입니다.
비탈진 능선을 넘고 또 넘어 참 하염없이 가고 가노라니 동녘하늘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산행 중 일출 감상이 또 하나의 맛이기에 혹시 놓칠세라 동쪽 하늘을 예의주시하며 한편으로는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솟아오르는 태양(5:51)은 빨갛다 못해 너무 새빨개 감나무에 걸려있는 홍시를 연상케 합니다. 

  

◈ 큰재에서의 고집통 - 백두대간 여덟번째 둘째날 산행 들머리

 

◈ 회룡재의 새벽

 

◈ 개터재의 새벽

 

◈ 백두대간의 일출

 

◈ 일출 - 홍시

 

◈ 윗왕실재 모습

  

산짐승들의 이동통로를 다리로 만들어 놓은 윗왕실재(6:07)에서 선두를 따라 잡았지만 백학산에서 아침식사를 할 것이라며 선두는 곧바로 출발 2 전을 외칩니다.
여기서부터 정말 장난 아닙니다. 오늘 해결해야 할 최고의 난코스를 아침 식전에 우리는 지금 해치우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어제는 그렇게도 바람 한 점을 주지 않던 날씨가 그래도 오늘은 살랑살랑 산바람을 보내 주십니다. 백학산(7:25)에서는 별도로 준비한 음식물이 없어 꿀 빵 2개로 아침 식사를 대신합니다. 

  

◈ 백학산 정상의 고집통

 

◈ 백학산 아래 임도에서 고집통

 

◈ 개머리재 모습

  

백학산을 출발(8:05)하여 임도(8:22)에 도착하니 대간길에서 보기 드물게 계곡을 만나고 물이 졸졸 흐릅니다. 나는 여기서부터 오늘의 종착지 신의터재까지를 대간의 실크로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이런 식으로 고도 차가 나지 않고 완만한 산길을 만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길이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이기에 말입니다.
사과나무가 있는 과수원과 까맣게 잘 영근 포도밭을 지나 개머리재(소정재, 9:30)에 오니 고개이름 한번 요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동네는 무슨 강아지하고 상관 관계가 그리도 많은지 아까 개터재를 지나고 이젠 개머리재까지 지나게 되니 말입니다. 그리고 보니 이번 산행 중에 개 짖는 소리를 듣긴 많이도 들은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개들의 판입니다.
뒷동산 높이의 산을 하나 넘고 보니 이번에는 과수원에서도 앰프가 앵앵거립니다. 사과나무가 『 MBC 강석우, 양희은의 여성시대』를 듣고 있습니다. 씨알 굵은 놈으로 잘 여물어 달라는 주인의 간절한 마음을 사과나무에게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과나무에 여성시대는 너무합니다. 여긴 지기재(10:25)입니다. 여기서 남진하는 대간꾼 3명을 스쳤는데 배낭 없이 맨몸으로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대간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존경스럽습니다. 

또 다시 뒷동산 높이의 산 하나를 오르고 밋밋한 능선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오늘의 목적지 신의터재(어산재, 11:55)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신의티재, 내가 내려선 쪽은 신의터재라는 표지석이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누군가가 정리 좀 해주어야겠습니다. 옛날 임진왜란 당시 의병대장으로 활동했던 충신과 관계 있는 역사적으로 뜻있는 고개를 놓고 서로 다르게 칭한다면 역사도 의병장도 뭐라 하겠습니까? 

  

◈ 신의티재 - 백두대간 여덟번째 둘째날 산행 날머리

 

◈ 신의터재에 선 기동과 고집통

  

이번 산행을 마무리하며 속을 들여 보자면 날씨는 무척 더워 최악이었고 거리 또한 최장의 구간이었고 신체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원만하게 산행을  진행하였기에 이번 여덟 번째 구간으로 인해 앞으로의 긴 여정에 대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난 이번 구간을 내게 행운을 준 대간의 실크로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같이 했던 일행들은 무척이나 힘들어 했는데 나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난 어려운 와중에서도 최상의 몸 컨디션을 유지했으며 언제나처럼 꼬래비가 아니었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