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9. 10. 17 (당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0구간(늘재~갈령 삼거리)
◈ 누 가 : 고집통 홀로
◈ 날 씨 : 우박을 대동한 비
◈ 대간 산행시간 : 126시간 13분(10구간: 9시간 27분)
15일차 늘재(5:50)→갈령 삼거리(15:17) 9시간 27분
접근거리 : 청화산 휴게소(5:40)→늘재(5:50) 10분
갈령 삼거리(15:17)→갈령(15:47) 30분
◈ 대간 산행거리 : 283.96Km (10구간: 19.42Km)
15일차: 19.42Km, 접근거리: 1.8Km
◈ 총 산행 거리 : 청화산 휴게소→늘재→696봉→밤티재→문장대→신선대→입석대→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 삼거리→갈령(약 21.22Km)
산악회에서 24일 무박으로 열 번째 대간을 간다는 공지가 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뒤로 하신 지 꼭 49일째가 되는 그날이 그날입니다. 살아생전 그랬다면 효자라는 소리 여러 천 번도 더 들었을 텐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버지의 영혼이 극락 세상에 안착 하시라고 실상사로 기원 드리러 가야겠습니다.
요즘 일기예보가 너무 잘 맞아 내심 걱정입니다. 산악회와 같이 할 수 없으니 17일로 택일하여 기상청에 들어가 보니 비올 확률이 70%라고 적혀 있습니다. 설마 일주일 후의 날씨 예보까지 맞으려고. 애써 마음을 다스려 보지만 걱정은 그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늘재, 문장대 구간은 비지정 코스로써 전국에서 국공의 단속이 가장 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북진으로만 일관해 왔었는데 이번은 새벽에 그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 남진으로 결정 했습니다. 어쨌든D-DAY는 와 버렸고 날짜를 뒤로 미룰 수 없으니 삼철이의 네비게이션에 청화산 휴게소를 찍었습니다.
열 번째 대간길은 속리산 국립공원 구간입니다. 사람들이 진표율사를 따라 세속을 여의고 입산한 곳이라 하여 세속 속(俗)과 여일 리(離), 뫼 산(山)자를 사용하여 속리산이라 한답니다.
12시 20분에 마눌님의 걱정을 뒤로하고 거제를 출발하였고 경북 선산휴게소에 도달할 즈음 빗방울이 두둑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급기야는 천둥번개까지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걱정이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청화산 휴게소를 새벽 4시 20분에 도착했지만 막상 빗속에 홀로 산속을 들어가려니 감히 엄두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청화산 입구에 희미하게 보이는 작은 성황당을 바라보니 신경이 곤두섭니다. 무서워서일까 이젠 아랫배가 살살 꼬이면서 뒤까지 마려워지기 시작합니다.
비는 그쳤지만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청화산 휴게소(5:40)에 삼철이를 홀로 두고 도로를 따라 늘재로 향했습니다.
늘재에는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이라는 간판이 있고 국공에서 이상한 논리를 펼쳐 아름다운 백두대간을 지키자는 간판도 세워 놓았습니다. 출발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디카를 작동하니 이런 낭패가 있습니까? 지난번 노자산 오를 때 고장 났던 디카는 배터리가 없어 작동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완전히 먹통입니다. 애석하게도 속리산의 아름다운 절경 속 단풍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하고 아쉬운 대로 폰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플래시를 마빡에 하나 또 하나는 손에 든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늘재를 출발(5:50)하여 어둠 속 고집통 단독 백두대간 열 번째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애초 생각했던 시간보다 약 2시간이나 지체하였기에 혹시 날이 밝아지면 국공의 단속에 쉽게 걸릴까 봐 사력을 다해 걸었습니다. 혹시 내 발 뒤꿈치를 따라 멧돼지나 귀신이 올까 봐 라디오 볼륨을 최대로 올렸습니다. 산행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짓가랑이는 빗물로 인해 흠뻑 젖어 버렸습니다.
696봉 정상에 다다를 즈음 첫 번째 암릉 구간이 나오고 세분의 산님을 만났으며 밤티재를 출발하여 버리미기재까지 간다고 합니다. 홀로 가는 나를 두고 남진하느냐며 대단하다고 격려를 해 주면서 바로 너머 정상에서 꼭 좌측 길로 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줍니다.
아닌 게 아니라 696봉 정상(6:40)에는 엄청난 규모의 암석이 나오고 잠시 길을 잘못 찾아 헤매다가 옳은 길에 접어 들었습니다. 송이버섯 입찰지역이기에 출입금지 하라는 경고문을 보고 헛웃음이 나옵니다. 이것 때문에 국공이 범칙금 50만원을 적용하여 악착같이 대간 하는 사람들 뒷다리를 잡는가 봅니다. 송이버섯 따는 사람은 국립공원을 저 마음대로 다녀도 무방하고 순수하게 대간길 가는 사람은 안 된다니 출발할 때 보았던 간판의 논리가 참 엉터리 입니다. 삯하고 하늘다람쥐가 웃겠습니다.
밤티재를 향해 내려가던 중 갈래 길을 만나고 나는 좌측 편 길을 선택했습니다. 밤티재 동물 이동 통로를 기준으로 약 20미터 아래의 도로에 접근이 되고 잠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인터넷 상에서 많이 보았던 밤티재(7:00) 감시초소가 있지만 이른 새벽이라 감시원은 없습니다.
철제 울타리를 뒤로 돌아 본격적으로 속리산에 들어가게 되고 길바닥은 마사 토양의 흙이 제법 많이 미끄럽습니다. 어느새 해가 올랐었는지 햇볕이 간간이 구름 사이로 비추기도 하고 언뜻언뜻 속리산의 속살도 보입니다. 엄청난 크기의 암봉들과 울긋불긋 물들어 있는 단풍들이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가히 장관입니다.
드디어 걱정 많이 했던 암석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개구멍이 나옵니다. 배낭을 벗지 않고는 도저히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네발로 기어야만 통과가 가능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개구멍인지 모르겠지만 개는 사람에게 해코지 하는 일은 절대로 없는데 왜 개를 빙자한 단어들이 그렇게 많은지 의문스럽습니다. 개자식, 개구멍, 개팔자, 개고생, 개떼 등등 개가 말을 못 알아듣기에 망정입니다.
때론 밧줄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론 작은 나무 등걸을 타고 유격을 하기도 하고 좁은 돌 틈 사이로 등을 비벼가며 겨우 몸이 빠져나갈 정도의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올라야 했습니다.
옛날 유명화가 정선과 안견의 멋진 산수화들이 틀림없이 속리산을 배경으로 그렸을 것입니다. 그 그림 속에 오늘은 내가 들어와 있습니다. 모나지 않으면서 울퉁불퉁 커다란 암석들이 산 정상을 타고 암릉을 장식하고 있고 사이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유지하는 나무들이 가슴 조이게 하며 안개 구름은 순식간에 몰려왔다 사라지며 산 전체는 가을 색으로 채색된 단풍들이 정말이지 동양화에서나 봄직한 선경입니다.
가히 신선들이 놀다 갔다는 말에 한 치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런 절경입니다. 오늘 내가 신선놀음에 취해가며 정상부근에 도착 할 즈음 하늘의 시샘인가 순식간에 천둥번개가 일더니 비바람이 몰아치며 딱딱한 무엇인가가 내 머리를 타닥타닥 때립니다. 쌀알 크기만 한 얼음덩어리 우박입니다. 머리에 구멍 날 정도는 아니지만 산행진행은 불가능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커다란 암반 아래 서른 명은 족히 쉴 수 있는 공터(9:00)가 있습니다. 새벽부터 쉬지 않고 올라왔으니 잠시 짐을 풀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소리가 들리고 정돈 잘된 깔끔한 헬기장이 나옵니다. 무심코 앞을 바라보니 웬 건물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아이쿠, 걸리면 큰일이다 싶어 얼른 되돌아갔다가 살며시 동정을 살피며 슬쩍 문장대 공터에 올라섰습니다. 어휴~~. 다행이 국공은 없습니다. 건물은 송신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담벼락이었습니다. 좌우지간 죄 짓고 살면 제 발 저린 다는 것이 틀린 얘기는 아닌 모양입니다.
문장대는 구름이 하늘에 걸렸다 하여 운장대라고도 한답니다. 살아 생전 세 번 이곳을 오르면 사후 극락세상에 갈수 있다는데 오늘로써 세 번째 올랐으니 이 티켓으로 내 아버지께서 극락세상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철 계단을 따라 거대한 문장대(9:25) 바위정상을 올라보니 회오리를 동반한 강풍이 불어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얼른 마눌님에게 문자 몇 자 넣고 다음 목적지 신선대로 출발했습니다.
많은 산님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문장대휴게소는 간데 없고 웬 놈의 포크레인이 산꼭대기의 흙을 다 까뒤집어 놓았습니다. 도대체 국공은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 것인지 삯, 하늘다람쥐, 망개나무를 지킨다고 사람은 못 가도록 하고 무슨 대단위 공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비록 걸리진 않았지만 나 자신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해 놓고 잘잘못을 지적하자니 참 씁쓸합니다.
속리산 주 능선을 따라가는 길 또한 기암괴석으로 뒤덮여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하여 신선대(10:00)가 나옵니다. 옛날에 신선이 노닐다 갔다 하니 정황으로 보아서는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선대 휴게소 안에는 부모님을 돕는다는 총각과 황구 진순이가 지키고 있습니다.
당귀신선주, 감자전의 맛이 일품입니다. 등짐을 지고 올라와서 판다니 가격은 세속의 두 배를 넘게 받지만 인간인 내가 신선 노릇하며 신선주를 마셨으니 그 정도는 감수가 됩니다. 충북 알프스를 종주하는 두 분의 산님을 스쳐 지나갑니다. 임경업장군은 무엇 하려고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저렇게 거대한 바위를 세워 버렸을까요? 입석대(10:50)도 스쳐 지나갑니다.
또 불청객 우박이 쏟아집니다. 오랑우탄 엄마가 새끼 오랑우탄을 안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바위를 지나칩니다. 그리고 시츄를 꼭 빼 닮은 바위도 말입니다.
삼파수라고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천왕봉(11:40)을 기준으로 낙동강, 금강, 남한강으로 세 갈래로 물줄기가 갈라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천왕봉은 일제 시대 때 천황봉으로 개명되었다가 최근 다시 천왕봉으로 되돌렸다고 하며 속리산 최고봉입니다.
천왕봉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험준한 바위산에서 아주 완만한 육산으로 탈바꿈되고 끊임없는 고독의 길로 접어듭니다.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형제봉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만 그냥 걸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치던 산님들마저도 끊어진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나마 벗이 되어주는 라디오에서 맛깔스런 진행으로 나를 웃겨주는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가 고맙습니다.
지리산 태극종주 산행기에서 비실이부부가 하봉에서 국공에 걸렸다는 내용을 보았는데 대간길에서 시그널을 보니 왠지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걸리지 말았어야 될 텐데.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내가 걱정입니다.
피앗재(13:40) 삼거리에 앉아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데 등 뒤에서 두 분의 산님이 나타납니다. 어찌나 반갑든지 『오늘 대간하시는 분 처음 만납니다』고 인사를 건네니 자기들은 이미 백두대간은 끝냈고 우복동천 종주를 하고 있답니다. 속리산은 정말 매력적인 산입니다. 가운데로 쭉 백두대간이 지나가고 왼쪽으로 살짝 걸쳐 충북알프스가 있고 오른쪽으로 걸쳐서는 우복동천이 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천지나 다름없는 멋진 산행코스가 정말 많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두 분의 산님을 뒤로하고 형제봉으로 가파른 길을 치고 오릅니다. 이미 여덟시간 이상을 걸어 다리에 힘이 빠져 다리가 팔자로 꼬입니다. 가다 쉬기를 여러 번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가분수 형태의 할배바위가 나옵니다.
할배바위 맞은편 큰 바위 뒤로 돌아 올라 형제봉 정상(15:00)에서 산행시작 후 처음으로 정상석을 보듬고 셀카를 찍어봅니다. 어째 글자가 거꾸로 나와 있습니다.
형제봉에서 갈령삼거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한 마디로 수직하향 그냥 내리 꽂습니다. 어찌 보면 남진을 해서 망정이지 이 길을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여름에 맛이 가버린 새끼 발가락이 신발 앞쪽으로 쏠려 욱신거립니다. 9월 대간길에 그렇게 그립던 갈령삼거리(15:17)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떨어집니다. 막판에 또 한 번 선물을 줍니다. 마음은 바쁘지만 발걸음은 잘 내달리지를 못해 지난번 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려서야 갈령(15:47)에 내려섭니다.
화북택시 김한동씨에게 전화하고 귤 몇 개로 허기를 채우고 있으니 하산길에 맞은 비로 인해 온몸이 오들오들 떨립니다. 이내 택시가 도착하고 늘재의 청화산 휴게소까지 순식간에 데려다 줍니다. 12,000원이 너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댓국이 맛있다 기에 굳이 그 곳을 찾아 간단한 식사를 하고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데 졸음으로 인해 깜짝깜짝 놀래는 일이 몇 번이나 발생합니다. 선산휴게소에 들러 잠시 눈을 붙였다 생각했는데 두 시간이나 지나버렸습니다.
다가오는 24일이면 아버지를 실상사에 모신지 꼭 49일째 되는 막제날이고 산악회에서 열 번째로 대간길을 떠나는 날입니다. 행사일정이 겹쳐버려 부득불 혼자서 미리 먼 길 여정에 나섰고 나름 고생은 하였지만 속리산의 이름에 걸맞게 세속을 떠나 하루 동안 내 자신이 구름을 타고 신선이 되어 유유자적 가을 선경을 즐기면서 안전하게 열 번째 구간을 마무리하여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는 내 아버지께서 또 다른 세상에서 안착하시도록 정성을 다해 빌어주고 주말 대간길을 떠나는 산악회 회원들의 안전한 산행으로 마무리되길 같이 빌어 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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