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09. 11. 21 (무박2일)
◈ 어 디 를 : 백두대간 11구간(늘재~버리미기재 )
◈ 누 가 : 삼성중공업 산악회원 43명과 고집통
◈ 날 씨 : 새벽은 눈이 오고 아침부터는 맑음
◈ 대간 산행시간 : 140시간 28분 (11구간: 14시간 15분 )
16일차 늘재(0:45)→버리미기재(15:00) 14시간 15분
◈ 대간 산행거리 : 301.45Km (11구간: 17.49Km)
16일차: 17.49Km
◈ 총 산행거리 : 늘재→청화산→갓바위재→조항산→고모치→밀재→대야산→촛대재→촛대봉→불란치재→곰넘이봉→버리미기재(약 17.49Km)
이놈의 인기는 언제나 사그라질는지? 이 좋은 가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 있는 곳에는 내가있고 내가 있는 곳에 술이 함께합니다. 분명 나 아니면 술 둘 중 하나는 문제가 있는데 어디 말 못하는 술이 문제이겠습니까? 거절 못하고 술 쫓아 가는 내 천성이 항상 문제겠지요.
내일이면 대간에 발 들여 놓은 이래 가장 길고 험한 대야산 코스를 무박으로 출발한다는데 밤 늦게까지 고현의 모 라이브하우스에 오늘도 앉아 있습니다. 혹사시키는 내 몸에 기본예의가 있어야겠기에 11시가 넘어서야 다른 사람 눈치 봐가며 쥐는 알고 새들은 모르게 살짝 자리를 피했습니다.
금요일 회사를 퇴근하고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는 내게 중부지방에는 날씨가 무척 추울 것이고 눈까지 올 것이라며 마눌님 걱정을 태산같이 해줍니다. 저녁 9시에 대경이가 무박 2일을 위해 거제를 출발하여 단 한 번의 여유도 주지 않고 그냥 늘재까지 내뺍니다.
대경이가 늘재에 닿을 즈음 산행대장님께서 지금 차창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으며 열한 번째 가는 이번 대간길은 최장거리이면서 산길이 위험하기에 상황을 보아가며 탄력적인 운행을 하겠답니다.
막상 늘재 고갯마루에 발을 내려놓으니 눈보라와 함께 몰아치는 11월의 밤바람이 부드러운 얼굴 살갗을 후벼 팝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한모자와 방한장갑 찾기에 바쁩니다.
후유! 겨울용 내복을 입고 왔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국태민안을 기원한다는 성황당은 순수하고 소박하여 느낌은 참 좋건만 무슨 국회의원, 누구누구 군수가 어쩌니 저쩌니 횡설수설 늘어놓은 유래비의 뒷글이 여~엉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어느새 날짜는 바뀌었고 눈보라 속에서 간단한 스트래칭으로 몸을 풀고 캄캄한 숲 속으로 청화산 정상을 향해 출발(0:45)합니다. 오늘 벌어질 일들에 대해 천지도 모르고 …….
아무 생각없이 앞사람의 꽁무니만 물고 걷습니다. 세찬 밤바람과 눈 빨 속이고 캄캄절벽이라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달리 할 일도 없습니다. 가끔 암릉이 나오고 밧줄을 타고 기어오르기도 합니다. 지겹도록 오른다고 생각될 무렵 청화산 이정목이 나타나고 바로 이어 푸른색 글씨체로 음각된 청화산(2:10) 정상석이 나옵니다.
어떻게 걸었는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습니다. 낙엽과 눈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죽죽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그래도 암릉구간이 아닌 평 길에서 넘어지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갓바위재일 것이리라 생각되는 헬기장 (4:15)을 지나갑니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뭉텅뭉텅 보이는 가로등 불빛들은 분명 문경의 한 시골마을일 것이며 희미한 불빛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사람들이 갑자기 부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할까도 문득문득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또 얼마나 걸었을까 내리던 눈은 멎었지만 바람은 여전한데 갑자기 앞서가던 일행들이 진도가 나지 않고 발걸음이 더뎌집니다. 어두워서 보이진 않지만 분명 발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임이 틀림없습니다. 바윗길은 이미 눈과 추위에 얼어붙어 미끄럽기 한량없지만 가지 않으면 안되기에 튀어나온 바위모서리 부여잡고 이름 모를 나무줄기도 의지하고 직벽 밧줄에 매달려가며 약 1시간에 걸쳐 간신이 통과하고 나니 조항산(5:35)정상입니다.
조금 전 지나온 그 길을 생각하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잘은 몰라도 아마도 엄청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밤이 아니고 낮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조항산에서부터 길은 정말 가파른 내리막 경사길입니다.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앞으로도 엎어져가며 간신이 선두를 따라잡아 고모치(6:13)에 도착했습니다. 「고모와 조카」에 얽힌 아픈 전설이 있어 고모치가 되었다 합니다. 바로 10m 아래에는 백두대간길에서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식수원인 고모샘도 있습니다.
889봉(6:58)에 오르던 중 동쪽하늘에는 붉은 여명이 비치고, 849봉(7:40)에서는 지도상의 마귀 할멈 통시바위일 것이라 생각되는 방향에서 일출을 맛 봅니다.
집채바위, 큰바위등 기암괴석이 줄줄이 나타나지만 밤새 긴장하며 걸은 탓인가 경치는 뒷전이고 배가 너무 고파 아침식사를 한다는 밀재가 너무 그립습니다. 드디어 밀재(8:08)입니다. 달콤한 휴식과 함께 충무김밥에 컵라면 한 개의 아침식사가 꿀맛이며 아침 햇살이 고맙습니다. 목 줄기를 타고 내리는 차디찬 소주 한잔도 마찬가지로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손은 너무 시립니다. 이마저도 마눌님 얘기를 들었으면 조금 더 나았을 것을 말입니다.
체온이 내려가고 날씨가 추우니 빨리 가기를 서두릅니다. 대문바위의 나무 명패가 보입니다. 아하! 저것이 대문이구나. 거대한 바위가 넘어질까 봐 그걸 받쳐놓은 작은 나무작대기 위의 송이바위(9:30)에 산 꾼들의 장난기 있는 재치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지금부터는 암릉과 소나무와 하얀 눈이 조화를 이룬 절경들이 황홀경에 빠지게 만듭니다. 누구랄 것 없이 카메라에 몸을 맡기고 앞으로 갈 생각을 않습니다.
물론 이곳도 로프에 의존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을 나아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오늘 원 없이 한 가닥 줄에 의지해 매달립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대야산(10:15) 정상입니다.
언제나처럼 일행들의 뒤를 따르는데 선두가 용추계곡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답니다. 행렬이 뒤돌아서다 보니 졸지에 나는 선두권에 들어있고 촛대재 방향으로 내려가다 난 숨이 한 순간 딱 멈춰버렸습니다.
대야산은 위험구간이 많아 로프를 타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어본 적이 있어 여태껏 지나왔던 것처럼 그냥 그런 길을 가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건 뭐입니까? 직벽100m를 로프 하나에 몸을 맡긴 채로 내려가야 한답니다. 가슴은 콩닥콩닥 거리고 두 다리는 풀려 버렸습니다. 앞서 가던 일행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침없이 줄을 타고 하강하고 있습니다. 차례는 다가오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스틱을 접어서 배낭에 부착시키고 오늘 처음으로 아이젠을 끄집어내어 신발에 부착합니다. 나중에 내려와서 보니 아이젠을 뒤집어 차고 있었습니다. 긴장이 도가 넘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고급 군대를 졸업하였기에 유격 근처에 가보지 않았던 내가 유격이란 걸 했습니다. 바위 중간중간에서 억세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약 10~20m의 길이로 묶어 놓은 로프를 이용하여 전 체중을 맡겨가며 하강했습니다. 유격 전문가들은 발바닥을 바위에 붙인채로 허리에 힘을 주고 하강하면 된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경험 없는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무리수 주문입니다. 손을 놓으면 세상 하직이니 죽지 않으려고 어찌 어찌해 살살 미끄러져가며 달달 떨면서 직벽을 모두 내려서는 순간 전신의 맥이 풀리고 양팔과 손에는 힘을 얼마나 주었든지 꽉 몽겨 버렸습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그것은 죽음과의 싸움이라고. 난 죽기가 무서워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난 백두대간이라면 다리에 힘이 있어 그냥 힘 닿는 대로 걷기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고 팔뚝에도 힘이 있어야 됨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약 60m의 직벽에 40m가량은 직벽이나 다름없는 급 경사길이었습니다. 모르고 왔으니 내가 한 번은 지나갔지만 알고는 다시는 난 이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할텐데. 그렇다면 나머지 대간길에는 이런 길이 다시 없어야 되는데 또 걱정입니다.
약 1시간을 소요하여 모든 일행들이 하강하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하여 촛대재에 도착하니 남진하는 아저씨, 아주머니 예닐곱 명의 산님들이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깔깔대며 대야산 직벽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눈앞에 다가올 현실이 뭔지를 모른 채 말입니다. 내가 남긴『꼭 성공 하십시오』의 인사말을 이해 할 시점이면 눈앞이 캄캄했었을 것입니다.
촛대봉을 오르다 뒤돌아 본 대야산은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저렇게 넓은 세상에 왜 저 혼자만 저렇게 쪼뼛하게 서서 여러 사람들을 간을 졸이게 만드냐 말입니다.
그렇다고 촛대봉 오르기가 아주 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나마 대야산은 로프라도 있지만 촛대봉은 그마저도 없습니다. 바위턱을 잡고 오르든지 아니면 가늘디 가는 나무를 잡고 올라야 합니다. 누가 이곳 대간길을 정리 좀 해주어야겠는데 비 지정코스랍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여럿 잡겠습니다. 촛대봉(12:08)에도 올랐습니다 .
엉덩방아와 곡예를 곁들여 무사히 이정표 없는 불란치재(12:28)에 도착했습니다. 이 고장의 지명이 재미있습니다. 불란치재는 불난고개 또는 춥지않은 고개 불한치(不寒嶺)가 변해서라고 하니 말입니다.
여기서 운영진들이 고민이 생겼습니다. 오늘 목적지는 은티재까지 이었으나 산행 시작 전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웠고 위험구간을 벗어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오늘 목적지까지 도착하기에는 어렵기에 버리미기재에서 산행을 멈추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갑자기 여유가 많이 생겼습니다. 다음 차수에서 고생을 할지언정 오늘 구간이 짧아진다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배낭 속 소주랑 남은 음식들이 아낌없이 토해져 나옵니다.
손으로 빚어도 저렇게 예쁘게 빚지 못했을 미륵바위(13:45)를 카메라에 담아두고 곰넘이봉(14:10)에 올라섭니다. 곰넘이봉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오름 길이 장난 아니고 오늘 산행 마무리인 내림 길도 쉽사리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벌벌 기어가기는 처음이나 별반 다름이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로프 선물을 한 번 더 제공해 줍니다. 오늘 하루 로프에 지긋지긋하게 매달립니다.
버리기미재에 다 도달해가는 모양입니다. 여기도 속리산처럼 국공이 정해놓은 비지정코스니까 앞서가던 일행들이 소리를 죽여달라는 주문을 해옵니다. 다 된 밥에 재 들어가면 안되니까 발걸음을 살살 옮겨 무사히 버리미기재(15:00) 도로 위에 올라섰습니다. 마음씨 좋게 생긴 대경이 아저씨의 말로는 낮에는 세 명의 국공이 지키고 있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쨌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없었기에 망정입니다.
「벌어 먹인다」, 「보리먹이」가 변해 버리미기재가 되었다고는 하나 정확히 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놈의 고개 이름의 유래가 어떻든 간에 오늘 일정을 마무리한다는데 너무 기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위험 앞에서 오금을 저리기는 난생처음입니다. 오늘 내가 행한 행동들이 무모했었다고 글 쓰는 지금도 세월이 흐른 나중에라도 변함없는 생각일 것입니다.
누군가 대야산을 또 가자면 난 틀림없이 강하게 좌우로 고개를 흔들 것입니다.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는 절대로 두 번은 안 갑니다. 저놈의 벼락박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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